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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의 흔적/전시회

거리의 영웅.장 미쉘 바스키아전. 강력추천 전시입니다.

by uiryn 2020. 11. 8.

JEAN-MICHEL

BASQUIAT 전시회 다녀왔습니다.

 

1980년대 혜성처럼 나타난 바스키아는

생을 마감하기까지 8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3000여점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번 전시는 바스키아의 예술세계 전반을 조망하는

회화,조각,드로잉,세라믹,사진작품 등

150여점을 선보입니다.

 

또한,

앤디워홀과 함께한 대형 작품을 전시하고 있어

감동과 여운이 남는 순간을 경험하실 것 입니다.

 

 

 

 

장 미셀바스키아'거리,영웅,예술

2020.10.08. ~2021.02.02 까지

 

 주차가능

티켓소지자 10분당 200원, 최대 4시간 4,800원

 

방문시 사전예약을 추천드리며

당일 사전예약은 힘들어요~

 

꼭!!!

네이버오디오클립으로

무료로 작품 설명도 청취하시기 바랍니다.

 

전시 관람시 사진촬영은 금지이나

촬영 허용 스티커가 붙여진 작품은 가능합니다.

 

 

 

"나는 흑인 예술가가 아닙니다.예술가입니다."

장 미쉘 바스키아

 

바스키아를 떠올리면,

아주 비싼 그림,낙서 예술가,해골 이미지 마크 등등~

 

대충 그린 듯한 그림같지만

그안에는 바스키아가 말하고 싶었던 

많은 이야기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천재화가 바스키아의 이야기를 보시기를 바랍니다.

 

 

 

전시장 벽면에 바스키아의 상징적인 왕관과

SAMO (세이모) 심벌이 그려져 있습니다.

세이모는 강력한 저항의 메세지가 담겨져있고

이 후 바스키아는 세이모를 작품 안 서명처럼 사용하며

본인의 로고처럼 사용했습니다.

 

 

 

장 미쉘 바스키아 <뉴욕,뉴욕 1981>

 

 

다양한 모티브의 드로잉과 무질서하게 쓰여진 단어들이 뒤섞인 작품은

긴장감을 증폭시키고, 시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구성으로

당시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바스키아의 작품은 그래피티의 자유로움과

저항정신이 담긴 새로운 회화의 탄생을 예고했습니다.

 

뉴욕의 건물들 사이로

왕관형태와 얼굴,암호같은 글자들이 캔버스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거리의 그래피티문화에서 비롯된 쓰고 지우기의 반복은

캔버스의 변형기로 나타나면서

자유로운 예술적에너지를 보여주는

바스키아만의 독창적인 방법입니다.

 

 

장 미쉘 바스키아 <비너스 .1982>

 

바스키아의 비너스는 전통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긴머리, 흰피부가 미의 기준이었던 서양미술과는 다르게

비너스라는 단어가 없었다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는

단순하고 전통적인 아름다운 모습하고는 다른 모습입니다.

바스키아의 비너스는

이 시대의 이상적인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질문을 담고

미의 기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앤디 워홀과 장 미쉘 바스키아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됩니다.

 

바스키아는 워홀과 인사를 나눈 뒤

함께 식사하자는 제의를 거절하고 작업실로 돌아가

워홀의 초상화를 그린 후 바로 다시 워홀에게 가져와 보여줍니다.

바스키아의 천재성을 알아 본 워홀은 바스키아와 함께

예술적 교감을 나누며 공동작업을 시작합니다.

 

2년간 150여 점의 작품을 공동 제작했고

많은 시간을 함께 하였으며, 워홀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이 들의 우정은 계속되었습니다.

 

1987년 워홀이 수술 합병증으로 갑자기 사망하고,,,

워홀의 죽음은 바스키아에게 큰 상실감을 주었습니다.

은둔생활을 하며 작픔활동을 하다가

워홀이 죽은 다음해...

1988년 약물과다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이번 전시에는 두 전설적인 천재화가

앤디 워홀과 바스키아가 함께한 5점이 전시됩니다.

 

 

 

 

 

 

바스키아와 워홀은 끈임없이 대형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워홀이 작품을 제작하면, 바스키아가 마지막으로 거친 붓질로

글씨를 쓰고 지워 작품을 완성하고,

워홀에 의해 창조된 대중문화의 상품 이미지들은

바스키아에 의해 지워지고 채워지면서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 했습니다.

 


바스키아가 쓰고 지우면서 완성해간 작품들 속에는

빈곤, 인종차별,산업화로 인한 도축,불평등을 포함한

사회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사회에 대한 공격메세지를

그의 예리한 관점으로 그의 그림으로 표현된거죠.

 

그가

과연

검은 피카소라

불리는 걸 좋아했을까요..??

 

 

 

미디어룸에서 바스키아의 활동과

그의 동료, 친구들의 인터뷰를 봅니다.

 

팁을 드리면 미디어룸이 2개인데 같은내용이예요.

그런데 두번째 룸이 한산하더라구요~~ㅋㅋ

첫번째 미디어룸 사람 많으면 걍 과감히 패스하세요~!!!

 

 

 

 

굿즈 구경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가~~~~~~

'조금 더 저렴해도 될텐데'

맞아요,,,,조금 더 저렴하게 해주십시요..

그래서 마음에만 담았습니다.

 

 

장 미쉘 바스키아전시.

그가 왜 두개골,왕관을 심벌로 사용하고

대충 그린 낙서 인듯한 작품의 메세지가

궁금하시다면

 

강력추천을 합니다.

 

 

 

 

오늘도 즐건 날들 되시고

구독과 공감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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